
한겨울 밤, 스코틀랜드의 작은 섬 도시가 갑자기 수백 개의 불빛으로 뒤덮인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평범한 랜턴이 아니다.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사람들이 거리를 행진한다. 선두에는 바이킹을 연상시키는 투구와 갑옷, 망토 등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거리 곳곳에서는 불빛이 흔들린다.
마치 수백 년 전 바이킹 시대의 군대가 현대의 도시로 돌아온 듯한 모습이다.
행렬이 도착한 곳에는 거대한 배 한 척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배 주변에 모인다.
그리고 잠시 후, 불길이 배에 옮겨붙는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불꽃이 솟아오르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는 천천히 불길에 휩싸인다.
이 장면만 보면 북유럽의 오래된 바이킹 의식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곳은 노르웨이도, 덴마크도 아니다.
바로 영국 스코틀랜드 북쪽 끝에 가까운 셰틀랜드(Shetland)다.
그리고 이 독특한 겨울 축제의 이름은 업 헬리 아(Up Helly Aa).
수백 개의 횃불과 바이킹 복장, 불타는 배가 등장하는 이 축제는 스코틀랜드의 겨울을 대표하는 독특한 행사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왜 스코틀랜드의 섬에서 바이킹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셰틀랜드의 독특한 역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1. 스코틀랜드에서 왜 바이킹 축제가 열릴까?
셰틀랜드는 스코틀랜드 본토에서 상당히 북쪽에 위치한 섬 지역이다.
지도를 보면 스코틀랜드보다 오히려 노르웨이와 북유럽 세계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유럽과 연결되어 있었던 셰틀랜드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바이킹의 활동을 빼놓기 어렵다.
중세 초기부터 북유럽의 노르드인들은 북해와 북대서양을 오가며 다양한 지역에 정착했고, 셰틀랜드 역시 노르드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게 된다.
오늘날 셰틀랜드 곳곳에서 발견되는 지명과 전통, 고고학적 유산에서도 이러한 북유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셰틀랜드는 오랫동안 노르웨이와 연결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5세기에 셰틀랜드의 지배권이 스코틀랜드 쪽으로 넘어오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셰틀랜드는 정치적으로는 스코틀랜드의 일부지만, 문화와 역사적 기억을 들여다보면 북유럽과의 연결고리가 매우 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다.
바로 이 역사적 배경이 업 헬리 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축제에서 등장하는 바이킹은 단순히 영화 속 캐릭터를 흉내 낸 것이 아니다.
셰틀랜드의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던 노르드 문화의 흔적을 현대적인 축제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현재의 업 헬리 아가 바이킹 시대의 의식을 그대로 복원한 행사는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입는 갑옷과 투구, 횃불 행렬, 배를 태우는 장면 등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고 발전한 현대적인 축제 문화다.
즉 ‘진짜 바이킹 시대의 축제가 그대로 살아남았다’고 이해하기보다는, 셰틀랜드가 가진 노르드계 역사와 지역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축제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업 헬리 아의 매력은 과거를 그대로 복사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적 배경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축제의 이름인 ‘Up Helly Aa’ 역시 셰틀랜드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을 보여주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축제는 셰틀랜드의 수도 격인 러윅(Lerwick)을 중심으로 가장 유명하게 펼쳐지지만, 셰틀랜드의 여러 지역에서도 각기 다른 형태의 업 헬리 아 행사가 이어져 왔다.
그중에서도 러윅의 축제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한겨울의 어둡고 추운 섬 도시가 불빛과 음악, 사람들의 행렬로 가득 차는 모습은 이 축제가 왜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는지를 보여준다.
2. 수백 개의 횃불이 밤을 가른다, 그리고 바이킹 배가 불타기 시작한다
업 헬리 아의 진짜 장면은 해가 진 뒤 시작된다.
낮에는 평범해 보이던 도시가 어두워지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수많은 횃불이 등장한다.
축제의 중심에는 ‘Guizer Jarl’이라고 불리는 축제의 주요 인물이 있다.
그를 중심으로 바이킹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갖춘 행렬이 만들어지고, 참가자들은 횃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갑옷을 입은 듯한 의상과 방패, 투구 등을 갖춘 참가자들이 불빛 속에서 이동하면 평범한 현대 도시의 풍경은 순식간에 다른 시대의 장면처럼 보인다.
특히 사진으로 보면 그 장면의 규모가 더욱 인상적이다.
검은 하늘 아래 수많은 주황색 불빛이 일렬로 움직이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한쪽에서는 음악이 들리고, 다른 쪽에서는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환호한다.
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야외 공연장이 된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업 헬리 아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따로 있다.
바로 바이킹 배를 불태우는 장면이다.

축제를 위해 제작된 거대한 배 모형이 준비되고, 행렬이 그 주변으로 모인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들고 있던 횃불이 배를 향한다.
불꽃이 하나둘 배에 옮겨붙기 시작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처음에는 작은 불길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 전체가 붉은 불빛에 휩싸인다.
한겨울의 차가운 밤공기와 거대한 불꽃이 만들어내는 대비는 매우 강렬하다.
이 장면 때문에 업 헬리 아는 흔히 ‘바이킹 배를 불태우는 축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이것을 단순히 ‘바이킹의 장례식을 재현하는 행사’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업 헬리 아는 여러 시대의 지역 전통과 축제 문화가 결합해 형성된 현대적인 행사이며, 배를 태우는 장면 역시 축제의 상징적인 절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특히 횃불과 불이라는 요소는 겨울의 어둠 속에서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불꽃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함께 모인다는 점에서 공동체 행사로서의 의미도 크다.
축제의 참가자들은 단순히 관객이 아니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의상을 만들고 행렬을 구성하면서 직접 축제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업 헬리 아를 보고 있으면 ‘누군가 준비한 공연을 구경한다’는 느낌보다는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행사를 함께 만든다’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진다.
3. 배를 불태우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축제가 공동체가 되는 이유
업 헬리 아를 처음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불이다.
하지만 이 축제의 진짜 매력을 불꽃 하나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함께 준비한다는 것이다.
바이킹 의상을 준비하고, 행렬을 구성하고, 배 모형을 만들고, 음악과 행사를 준비한다.
축제 당일에는 참가자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 관람객이 함께 모인다.
그리고 한겨울의 어두운 밤을 함께 보낸다.
이런 모습은 셰틀랜드라는 지역의 특성과도 연결된다.
섬 지역의 문화는 외부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보여주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업 헬리 아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바이킹이라는 과거의 이미지가 단순한 역사책 속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셰틀랜드 사람들의 정체성을 단순히 ‘바이킹의 후손’이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표현이다.
셰틀랜드의 역사는 노르드 문화뿐 아니라 이후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역사, 섬 지역의 생활문화가 함께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 헬리 아를 바라볼 때는 ‘바이킹 시대가 그대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노르드계 역사에 대한 기억이 현대 셰틀랜드의 지역 축제 문화 속에서 재해석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흥미롭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축제의 계절이다.
업 헬리 아는 한겨울에 열린다.
스코틀랜드 북쪽의 겨울은 낮의 길이가 짧고 밤이 길다.
이런 환경에서 수백 개의 횃불과 거대한 불꽃은 단순한 장식 이상의 강렬한 분위기를 만든다.
어두운 겨울밤을 밝히는 불빛.
차가운 공기 속에서 들려오는 음악.
바이킹 복장을 한 사람들의 행렬.
그리고 마지막 순간 밤하늘을 밝히는 거대한 불꽃.
이 모든 요소가 합쳐지면서 업 헬리 아만의 독특한 장면이 만들어진다.
결국 이 축제가 특별한 이유는 ‘불타는 배’ 하나 때문이 아니다.
그 배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역사적 기억을 축제의 형태로 재현하는 지역 공동체, 그리고 그 모습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 헬리 아를 보고 있으면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겹쳐 보인다.
바이킹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문화적 흔적은 셰틀랜드의 역사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현대의 셰틀랜드 사람들은 그 흔적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한다.
배를 만들고, 의상을 입고, 횃불을 들고, 한겨울 밤거리를 행진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거대한 불꽃이 밤을 밝힌다.
어쩌면 업 헬리 아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바로 이 장면일 것이다.
수백 개의 불빛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모습.
그 불빛을 따라 사람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
그리고 그 끝에서 거대한 배가 불타오르는 순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마치 바이킹 시대가 갑자기 현대의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셰틀랜드의 역사와 지역 공동체, 북유럽과 연결된 문화적 기억을 오늘날의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축제다.
그래서 업 헬리 아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바이킹을 재현하는 축제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기억을 현재의 불빛으로 다시 밝히는 축제.”
한겨울 스코틀랜드의 밤.
수백 개의 횃불이 어둠을 가르고, 바이킹 복장의 사람들이 거리를 행진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거대한 배가 불길에 휩싸인다.
그 순간 셰틀랜드의 밤은 잠시 아주 오래전 북해를 누비던 시대와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다.